최근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MBK파트너스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는 국내 기업사에 중대한 분기점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9월부터 공개매수에 나섰으며, 이는 시가총액 10조원 이상의 대기업에 대한 국내 사모펀드의 첫 적대적 M&A 사례이다. 고려아연은 현재 3세 경영 체제로 전환되면서 최윤범 회장의 지분이 15%대로 떨어진 상태에서 MBK는 이 기회를 노렸다.
기존 재벌체제의 안정적 경영을 옹호하는 목소리와 달리, MBK의 활동에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최 회장 측은 공적 자금을 통한 자사주 매입과 대규모 유상증자를 계획하며 경영권 방어에 나섰지만, 이러한 행위는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를 희석시킬 우려가 크다. 고려아연 주식은 급격히 하락하며 현재의 경영진과 사모펀드, 주주, 당국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 사건은 또한 한국의 전통적인 재벌체계에서의 변화의 조짐을 보여준다. 1945년 광복 이후 재벌 가문들은 경제의 주요 부문에서 지배력을 행사해왔지만, 국내외의 자본주의 흐름은 점차 ‘가문 경영’에서 ‘펀드 및 자산운용사가 선임한 전문경영인 체제’로 변화해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GE, 일본의 히타치와 같은 대기업들이 금융기관에 의해 소유되는 형태로 진행되며, 한국의 재벌가문들이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경영권을 유지하기 점점 어렵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벌 개혁의 첫걸음으로 상속세 개편이 제안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상속세율이 50%로 설정되어 있어 재벌가문들에게 부담이 크며, 이는 주주환원에 대한 유인을 저하시킨다. 전문가들은 상속세율을 25%로 낮추고, 배당소득세를 별도로 단순 과세(15.4%)하도록 개편한다면 재벌가문들이 배당을 늘리고 주주환원에 적극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두 번째로 필요한 정책은 상장폐지의 적극적 진행이다. 일본의 사례처럼 투자자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기업들은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하며, 이는 주주권익 보호의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한국의 상장 기업들은 계속해서 적자 기업과 좀비기업이 남아 있어 시장 신뢰를 저하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산운용사의 역량 증진이 요구된다. 금융시장 내에서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으려면, 자산운용사들은 장기적인 가치 창출을 위해 실력을 배양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긍정적인 순환이 한국의 기업 환경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결국 고려아연 사례는 한국 경제 체제의 변화를 암시하며, 포스트 재벌체제로의 진입을 위한 정책적 노력과 대안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