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된 제도가 주목받고 있다. 2017년, 호주는 청년층의 주택 구매를 위한 제도인 ‘첫 주택 퇴직연금 저축(FHSS)’을 도입했다. 이는 퇴직연금을 일부 인출해 주택 마련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으로, 퇴직연금에 제공되는 세제 혜택을 유지하면서 집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호주는 노후 자금의 무분별한 사용을 방지하기 위해 인출 조건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애덤 호킨스 호주 재무부 차관보는 “FHSS는 연간 최대 1만5000호주달러, 누적 최대 5만호주달러까지 인출을 제한하고 있으며, 가입자가 자발적으로 납입한 금액만 인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무주택자가 주택 구매 의사만 입증하면 확정기여형(DC) 및 개인형(IRP) 퇴직연금을 제한 없이 인출할 수 있다.
호주의 FHSS는 생애 첫 주택 구매자에게만 인출을 허용하고, 실제 거주 요건도 두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실거주 요건 없이 무주택 요건만 충족되면 여러 차례 인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주택 구입을 위한 퇴직연금 중도 인출액은 1조5217억 원으로, 2019년의 8382억 원에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2023년 한국의 DC 및 IRP 퇴직연금 적립금은 약 175조원으로 추정되며, 이 중 주택 구입을 위한 인출 금액은 0.87%에 해당한다. 호주에서는 퇴직연금의 FHSS 인출액이 2024년 2억5520만호주달러로 전체 적립액의 0.006%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이 호주에 비해 100배 이상 높은 비율로 미래 노후 자금을 선 사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선진국에서는 과도한 중도 인출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중도 인출 시 세제 혜택을 반환해야 하며, 10%의 페널티 세율이 적용된다. 영국에서는 55세 이전에 인출할 경우 55%의 소득세가 부과되어 조기 수령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이두원 호주 시드니대 경영대학 교수는 “퇴직연금 중도 인출 제도가 정비되지 않는다면, 향후 부동산 시장이 상승할 때 노후 자금이 급격히 주택시장으로 쏠릴 수 있다”며, “지금 막 성장기에 접어든 한국의 퇴직연금 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청년층 주거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음을 시사하며, 정부와 사회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과 호주 간의 퇴직연금 규제 차이는 단순히 경제 구조의 차이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복지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도 관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