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인도 총리 만모한 싱이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정계 및 산업계의 여러 인사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며 애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만모한 싱을 인도의 “가장 뛰어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평가하며, 그는 인도의 경제 정책에 강한 영향을 남긴 존경받는 경제학자라고 말했다.
만모한 싱은 2004년 총리직에 오르기 전, 1982년에는 인도 중앙은행 총재로, 1991년에는 재무장관으로 재직했다. 재무장관 시절 그는 인도의 경제를 탈규제하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일련의 개혁을 주도했다. 당시의 심각한 외환위기에 직면한 그는 P.V. 나라심하 라오 총리와 함께 경제를 자유화하여 인도의 급속한 성장 기초를 마련했다.
‘역사는 그가 1991년 변혁적인 개혁에서 맡았던 중대한 역할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인도의 두 번째 부자이자 아다니 그룹 의장인 고탐 아다니는 표현했다. 싱은 2004년, 의회 선거에서 가까운 아군인 인도국민당이 대승을 거둔 후, 통합 정권의 수장으로 임명받았다. 그의 총리 재임 기간인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인도의 국내 총생산(GDP)은 초기 급격하게 확대되었으며, 이 새로운 부를 농촌 고용 보장 법안과 같은 사회 프로그램에 배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싱 총리의 후반기에는 성장 둔화와 개혁의 정체, 정부의 특정 인사들에 대한 부패 혐의로 인해 암울한 상황이 이어졌다. 또한 싱은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여러 차례 미국을 방문하며 국가 간의 협력을 증진시켰다. 2006년,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했을 때, 싱은 인도가 미국의 원자력 기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협정도 체결하였다.
미국 국무부는 만모한 싱의 죽음을 기리며 “그는 미-인도 전략적 동반자의 위대한 챔피언 중 한 명이었으며, 그의 업적은 지난 20년 간 양국 간의 성과를 쌓는 데 기초가 되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싱은 러시아와의 관계도 심화시켰으며, 2000년 시작된 인도-러시아 연례 정상회담에 정기적으로 참석해 두 국가 간의 협력을 강화하였다.
러시아 대사 데니스 알리포프는 소셜 미디어에서 “만모한 싱 박사의 두 나라 간의 관계에 대한 기여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전했다. 그의 사망은 인도의 정치 및 경제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한 인물의 잃음을 상징하며, 다양한 분야의 지도자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며 헌사하고 있다.